한국기독교장로회 제60회 총회(1975년)는 선교정책을 강화하고자 선교교육위원회를 조직하고 선교사업국과 선교교육원을 설치하기로 하다.
그 설립취지는 교회의 본래적인 사명에 충실하기 위한 목회자와 평신도 지도자의 계속 교육, 그리고 도서 출판과 조사연구 사업을 보다 효과적으로 수행함에 있다. 이는 당시의 독재적 정치상황과 반인권적 경제 성장주의에 대응하려는 기장의 결연한 결의이기도 하다.
요구되는 교육시설을 위해 카나다 연합교회 한국선교회 재산(현 교육원 부지 / 서대문구 충정로 소재)을 인수하여 다음과 같이 개보수하다.
강의실 : 대강의실(80명 수용) 1개,
소강의실(40명 수용) 1개,
생활관(40명 수용),
도서실 1개, 휴게실(식당겸용) 40명 수용,
연구실(10명 내외) 5개)

1976년 2월 1일 안병무 박사가 초대원장으로 취임하고, 1976년 4월 26일 선교교육원 개원 예배를 드리다.
교역자 계속교육, 선교신학대학원과정, 총회 위촉생 교육, 전도사 통신신학교육, 평신도 지도자 교육, 교단 지도자 초청 세미나, 출판사업, 조사 연구 사업을 실시하다.
특히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제적당한 한국신학대학 학생들의 계속 교육과 일반 대학 제적생들을 수용하여 신학교육을 계속하였으며 추방당한 해직 교수들이 여기에 모이게 된 것은 특별한 신학 작업의 기초가 되다.
안병무 원장이 이른바 명동 3·1 사건으로 구속됨(1976. 3)으로 김성환 목사가 원장 직무를 대행하다.

안병무 원장이 1977년 2월 25일 석방되면서 선교교육원의 사업이 본격화되다. [구역예배교재] 발행으로 출판사업에 활력을 불어 넣다.
서남동 박사가 1978년 3월에 제2대 원장으로 취임하였으나 1980년 5월에 이른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다. 1981년에 석방되고 그 기간 동안 신종선 목사가 직무를 대행하다.
1984년 제69회 총회의 기구개혁에 따라 기관명을 [총회교육원]으로 바꾸다.
한국인의 역사적 경험 속에서 주체적인 신학작업이 이루어지게 되다. 민중신학의 산실이 된 것은 세계 신학계에 끼친 커다란 공헌이다.

서남동 박사3대 원장의 직무를 감당하던 중 5·18 고문 후유증으로 급작스럽게 서거(1984년 7월 19일)하여 한신대학 교수인 박근원 박사가 1984년 12월 1일부터 1990년 10월 30일까지 원장 직무를 대행하다.
지교회의 목회적 요청에 부응하기 위한 자기 변신이 이루어지다. 설교, 성만찬, 세례 등 목회의 실제 문제를 신학적으로 정리하고 현대적 대안을 창출하기 시작하다.
여자전도사 양성과정을 개설하다.

김상근 목사가 1990년 11월 1일 제4대 원장으로 취임하여 제5대까지 역임하다.
선교의 사회적 대응과 세계 교회의 J.P.IC 신학을 한국 교회의 목회적 지평에 융합시키고자 교육과 출판을 발전시키다.

1) 목회현장을 돕기 위하여
① '신년목회계획 목회자세미나'를 개최하여 새해의 목회계획을 함께 세우며,
② [주일 공동 설교자료]를 지교회 목회자에게 공급하고,
③ [예식과 설교자료집]을 발간하였으며,
④ 교회학교 교재에 [학습자용 교재]를 보충하며,
⑤ 농어촌 교회의 목회자를 위하여 선교신학대학원과정 이동교육을 시행하기 시작하다.
2) 정보화 시대에 대비하여
① '현대 목회를 위한 컴퓨터 교육'을 개설하고,
② 자료 수급의 일부를 전산화하기 시작하다.
3) 신학과 목회의 실천적 접목을 위하여 '목회자 안식년 연구과정'을 준비하다.
4) J.P.IC의 신앙화를 위한 문화적 접근을 위해
① 노래패 '새 하늘 새 땅'과 함께 노래운동을 전개하고,
② 희년 노래를 창작하고 보급하다.
김상근 원장이 대한기독교서회 사장으로 부임함에 따라 1997년 12월 23일 원장 직무를 사임하다.
원장 공석으로 인하여 1998년 1월부터 6월까지 총회 총무 박종화 목사가 원장 직무를 대행하다.

김원배 박사가 1998년 7월 1일부터 2006년 6월 30일까지 제6, 7대 원장을 역임하다.

1) 교회와 목회의 현장의 요구에 부응하고자 장기교육과정인 선교신학대학과정과 여자전도사대학과정의 지역교실을 강화하다.(목포교실, 서천교실, 대전교실 등)
2) 교단의 사회적 선교의 전통을 21세기의 변화된 상황에 접목시키면서 열린 사회를 향한 교회의 책임과 사명을 감당코자 제83회 총회(1998년)의 결의에 따라 1999년 5월 22일, 총회교육원 부설 '사회교육원'을 개설하다.
3) 목회현장을 점검하고 보다 전문화된 목회능력과 영적 재충전을 꾀허려는 목적으로 목사안수 후 7년 차에 해당되는 교단 내 모든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한 의무교육과정으로 '목회자 안식년교육'을 신설하다.
4) 격변하는 시대의 흐름을 읽고 상황에 적용되는 목회 아이템을 개발하기 위한 광역별 혹은 노회별 노회이동 목회자 계속교육을 실시하다.
5) 장로 임직 후 7년 차에 해당되는 장로들의 안식년교육과 신규 피택 장로들의 영적 재충전을 위한 의무교육과정으로서 '장로지도자과정'을 실시하다.
6) 21세기 교회학교 새교재가 5년여 동안 커리큘럼과 공청회 등 워크솝과 집필과정을 거쳐 2003년 12월에 출간*2004년 1월부터 사용)하였고, '구역예배' 교재를 귀납법적 이야기식으로 출간하다.
7) 83회 총회 결의에 따라 고시위원회의 지도하에 목사후보생수련과정을 2005년 시행하다.
서대문 선교교육원 부지에 총회회관을 건축하는 문제로 진통을 겪다가 1년 간의 창천동 시대를 거쳐 2005년 5월 북한산 기슭 아카데미로 교육원을 이전하다.
제91회 총회(2006년)의 결의에 따라 총회 교육원을 지도, 운영할 목적으로 '총회 교육위원회'를 신설하다.
김종무 목사가 2006년 12월 5일 제8대 원장으로 선출되다
1) 교회교육을 활성화하고 신앙을 함양하기 위해 '교회학교교재'(예수님 따라 여섯걸음)을 새롭게 출간하고, '구약문지방 넘기'와 '복음을 전파하라'를 발행하다.
2) 교단의 미래를 보면서 교역자 수급의 문제를 해소하고 교단의 2015운동을 활성화하기 위해 '총회목회신학(4년제)'를 인가받다.